작별인사
월요일.
회사게시판엔 회사 고위임원분의 작별인사가 올라왔다.
어르신들이 으례히 쓰시는 한문문구 많은 형식적인 글이 아니라
동생같고 자녀같은 후배사원들에게 담담히 쓰신 편지같은 글이었다.
읽고 나니 월요일 아침부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방사업장에 근무하는 나는 그 분을 몇 번 뵌 적도 없는데
그만두시는 그 분을 생각하며 가슴이 뭉클한 건
그 분이 그만큼 진심으로 직원들을 대하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8년 전 직장을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후
지금 직장의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었다.
그 때가 8월.
10월이 되어도 연락이 오지않아 탈락자에게 연락도 주지 않는
매정한 회사구나라고 생각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던차
10월 31일에 갑자기 내일 면접을 보러오라고 전화가 왔다.
그 날은 지원한 다른 회사의 면접일과 같은 날이어서
고민하다가 결국 지금 직장으로 면접을 보러갔었더랬다.
당시 다니던 직장에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까지 하고 면접을 보러갈 정도로
이직을 하고 싶었다.
그 때 면접관으로 계시던 분이 바로 이 임원분이셨다.
다른 면접관들이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동안
이 임원분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하셨고
마지막에 딱 한가지 질문을 하셨더랬다.
어떤 시스템에 대해 물어보셨고,
사실 난 그 때 그걸 잘 모르겠다고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그 시스템인 것 같다고 대답했었다.
뚫어져라 보셨던 것은 내 관상을 보셨던 걸까.
(사실 내 얼굴이 50대 이후 남성분들에게 먹히는 얼굴인 것 같기는 하다...
다들 조아하신다. 그러니까 결국 촌스럽게 생긴 얼굴이라는.... ㅠㅠ)
지원한 다른 회사의 면접도 있었으므로 큰 기대는 안 했었는데
운 좋게 합격이 되었고 지금까지 회사 잘 다니고 있다.
그 이후로 계열사/소속이 바뀌면서 임원분과 다른회사에 배치되었는데
그 분도 지금의 회사로 이동하시며 같은 회사 소속이 되었다.
KFC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인자하고 자상한 풍채이신데
실제로 말씀하시는 것 또한 자상하시면서 유머러스하셔서
직원들이 편안하게 임원분을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난 잘해야 일년에 한 번 정도 뵙는게 대부분이었지만
채용시 면접하신 것을 기억하시고,
뵐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안부를 물어주셨었다.
게시판에 올리신 글을 보고 이틀동안 고민을 했었다.
애교있고 사회성이 밝은 성격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메일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메일을 드렸다.
지금 이 회사와 연을 맺게 해주셔서
그리고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답장을 해주셨다.
나를 기억해주시고 또 축복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감사하고 감동적인 답장을 받고 motivation이 되었다.
이렇게 좋은 상사분들은 회사를 떠나시고
상사의 지위와 권위의식만 내세우는 분은 안 떠나셔서
다음 날은 좀 우울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리고 로열티를 고무시키는 것은
지위나 금전적인 혜택이 아니라
상대(이 경우에는 상사)가 나를 얼마나 인간적으로 대하고
존중해주는지를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나처럼 로열티가 높은 성향을 가진 사람은 더더욱.
부족하고 단점이 있어도, 그보다는 장점을 바라보고
또 따뜻한 마음으로 인간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면
나도 이 분처럼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을까.
이제 회사를 떠나신다고 하니
그 분께서 시행하신 많은 좋은 제도들과
그 분의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작별인사에도 쓰셨든 일하기 좋은 회사를 위해 노력하셨다고 했는데
이 분이 계시는 동안엔 정말 즐겁고 재미있게 회사생활을 했고
나의 output도 최고였던 기간이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인으로서의 평생을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일하셨으니
이제 편안하게 쉬시면서 삶을 즐기셨으면 좋겠다.
항상 건강하시고 축복만이 가득한 제 2의 인생을 즐기시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