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처음 성석제의 작품을 읽은 것이
쏘가리인지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인지 가물가물하지만
처음 그의 글을 읽고 나서 20여년 가까이
그의 신작을 거의 모두 사서 읽어왔다.
그런데, 내가 변해서인지 그가 변해서인지
어느 산문집 (소풍이었던 것 같다)을 읽는 동안
어느 부분에서 갑자기 거부감이 들었고
그 이후로는 그 거부감이 주욱 계속되어
한동안 기쁨이 아닌 의리로 그의 신작을 사서
꾸역꾸역 읽어야 했다.
전작 단 한 번의 연애를 너무 괴롭게 읽은터라
이 투명인간도 사지말까? 하다가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읽어온 기간에 대한 예의로
구입을 했고 첫 장을 읽을 때까진 신선했다.
제목도 투명인간이었고, 첫 장에서부터 투명인간이 등장해서
나름 황당무계한 SF적 요소가 있을줄 알고 기대하며 읽었는데
몇 장 읽고 나서는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 정말 읽기 힘들었다.
김만수라는 평범한 한 아이의 탄생부터
투명인간이 되기까지의 그의 일생을
그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1인칭 시점으로 얘기하는 구조로 소설은 전개된다.
문득 포레스트 검프가 떠오른다.
그는 약간 어눌하고 바보같은 인물로 묘사되지만
포레스트 검프라는 인물은 미국을 과거부터 그 당시의 현재까지 이끌어온
미국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평론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김만수도 마찬가지로, 김만수가 거쳐온 삶은
우리 한국의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독히 가난한 시골에서 형제들과 부대끼며 경쟁하며 살다가
서울로 상경하며 도시의 변두리에서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여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한 땐 먹고살만한 때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룩한 급속한 경제성장과
밸런스가 맞지 않은 사회의식의 대립으로 인해
서로 다투고 찢기고 상처만 남게되는 소시민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집안의 희망, 장남의 공부와 출세를 위해 소를 팔거나
밤새워 미싱을 돌려 큰오빠 또는 동생들을 공부시켜야하는 어느 집안 딸들의 모습.
이런 묘사들이 나의 과거의 삶을 계속 상기시켜 책을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렸을 땐 가난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 생각하니 그 때 우리집은 정말 가난했었구나,
그 정도로 가난하지만 않았어도 지금의 나는 이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텐데...
이런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물론 지금 먹고살만하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결핍 뿐만 아니라
내게 부족했던 유년 시절의 많은 결핍들이 자꾸 떠올라
이 책을 읽는 내내 김만수씨의 과거와 나의 과거를
평행하게 머릿속에 떠올리며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난 그들이 투명인간이 된 게 아니라
모두 이 세상에서 생을 끊은 채
영혼으로서 한 가족을 이뤄 드디어 행복해진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투명인간이 되었든 아님 내 생각대로 그들이 귀신이 되었든
그 삶만큼은 화목하고 행복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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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구성 - 김만수의 주변인물이 모두 1인칭 시점으로 말한다는 것 -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매 단락을 읽으면서 이건 누가 말하는 건가...참 헷갈리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제일 마지막장.
소름끼치는 반전이었다.